제가 [뉴스위크 한국판] 2007년 12월 19일자, 810호에 기고했던 내용입니다.
물론 뉴스위크 기사에는 제가 제공했던 원문이 살짝 편집되어 나갔지만요...^^ (기사원문보기)
우리 사회에 불임부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주위를 살펴보면 최근 결혼하는 부부 10쌍 중 한두 쌍은 불임부부인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요즘 같은 때에는 결혼 후 몇 년이 지나도록 아기가 없는 부부에게
“이제 아기 낳고 오순도순 잘 살아라”는 말은 덕담이 아니라 자칫 상처를 후벼파는 말이 될 수도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00년을 기준으로 불임부부가 140만쌍이었고, 기혼여성의 불임률이 13.5% 였다고 한다.
2002년에는 불임환자가 106,887명(여성 90,539명, 남성 16,348명)이던 것이 2006년에는 157,652명(여성 133,653명, 남성 23,999명)으로 50% 가량 증가했다.
임상에서 불임환자들을 접하다보면,
불임 중에서도 ‘기능성 불임’과 원인을 뾰족이 발견하지 못하는 ‘원인불명성 불임’ 환자들이 부쩍 늘어났다.
눈에 보이는 자궁의 기형, 나팔관 폐쇄 등 구조적 결함 때문에 불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배란과 생리를 조절하는 기능에 균형과 조화가 깨져서 생기는 불임이 늘었다.
이런 불임이 증가한 것은 최근 들어 한국인의 몸 속에 불임유전자가 많아져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몸이 바뀌기 이전에 몸을 둘러싸고 있는 바깥 환경, 즉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자연환경의 변화가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사람 몸 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음식이 20년 전에 비해 사뭇 달라졌다.
첫째, 가공된 음식이 많아졌다.
현대인들은 자연 상태 그대로의 음식보다는 공장에서 가공되어 나온 음식을 더 자주 접하게 되었다.
대량 생산된 음식이 장기간 보존되면서 유통되려면 반드시 가공되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화학물질의 첨가는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자연의 소산인 ‘식물’이 ‘식품’으로 바뀌었다.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식품들도 많아졌다.
둘째, 음식은 점점 달고 기름지게 변하고 있다.
설탕과 유지의 소비량이 하염없이 늘고 있으며, 달콤하고 부드러운 음식, 튀겨낸 음식들의 인기는 결코 수그러들지 않는다.
셋째, 식물과 동물의 생장과정 역시 부자연스러워졌다.
식물은 유전자조작을 통해 슈퍼 농작물이 되어가고, 동물은 빨리 자라고 쉽게 살찌는 방식으로 사육 당한다.
음식이라는 것이 한 편에서는 여전히 생존의 수단이지만 한 편에서는 사업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더 싸게, 더 많이, 더 빨리’ 라는 자본주의 구호 아래, 음식은 점점 자연스러움을 잃게 된 것이다.
많은 불임여성들이, “임신이 잘 되려면 무엇을 먹어야 돼요? 무슨 차가 좋습니까?”를 묻는다.
그러나 필자가 먼저 강조하는 말은, “무엇을 먹는가보다 무엇을 먹지 않는가가 더 중요하다.”이다.
우선 줄여야할 음식은 저질지방과 정제당이 많이 들어간 음식이다.
저질지방이란 포화지방산과 트랜스지방을 말한다.
동물에 들어있는 지방은 주로 포화지방산이며, 식물 지방 중에서도 라면이나 과자를 튀길 때 쓰는 야자유도 포화지방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로 튀김을 만들 때 쓰이는 쇼트닝류의 기름에는 트랜스지방이 잔뜩 들어 있다. 트랜스지방은 기름의 보존 상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가공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지방으로, 자연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기형지방이다.
이러한 저질지방들은 몸 속에 들어와 염증성 열(熱)을 일으키기 쉽고 몸 안의 정기(正氣) 즉 면역력, 자정능력과 같은 바른 기운을 깎아버린다. 저질지방은 피를 탁하게 하고 혈액순환을 방해한다. 수태능력을 끌어올리려면 이런 저질지방을 멀리해야 한다.
그러나 지방에 대해 오해는 말자.
강남의 IT계열 회사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던 32세 기혼여성 김 모씨는 키가 168cm에 몸무게가 48kg이었다.
그녀는 직장에서의 자신감을 위해 최근 6개월간 8kg을 감량한 상태였다. 그녀는 지방은 다이어트의 ‘적'이라 생각하고 일절 입에 대지 않으려 했고, 언제나 저칼로리 음식만으로 소식을 하려 애쓰고 있었다. 당시 그녀는 뭇여성들이 부러워하는 체중을 갖고 있었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탄력이 없이 늘어진 피부에, 뼈가 얇고, 피부색이 칙칙한 ‘불건강’ 상태였다. 그녀가 그런 몸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동안 그간 잘 나오던 생리가 끊어졌고 배란도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임신이 이루어지는 법이다. 부족한 영양상태에서는 그저 자기 몸이라도 지켜내는 것이 한계일 뿐이며, 다음 세대를 생산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은 몸의 사치이다. 몸이 지혜롭기 때문에 에너지를 아끼며 몸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에게 정말 더 필요했던 것은 약이 아니라 “보약이 되는 일상 음식”이었다. 좋은 식사 원칙을 배우고 식탁이 회복되자 그녀의 체중은 다시 건강한 체중으로 회복되었으며, 혈색과 피부가 좋아졌고, 스스로도 컨디션이 향상된 것을 느꼈다. 이내 생리가 다시 규칙적으로 회복되어 필자를 만난지 6개월 만에 임신 소식을 알려왔다.
지방은 결코 ‘적’이 아니다. 지방은 인간의 생명활동에 필수불가결한 영양소이며, 여성호르몬을 만드는 데에도 중요한 원료가 된다. 경계해야 할 적은 ‘저질 지방’일 뿐이지 지방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은 반드시 충분하게 섭취해야 한다. 전통적인 한국식단은 서양식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방이 부족해지기 쉬우므로 지방이 부족해지지 않도록 식단관리를 잘 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동물성 포화지방이나 우유제품으로 채우기 보다는 식물의 종자(콩, 깨, 견과류), 해조류, 그리고 생선에 많이 들어 있는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으로 채워야 한다. 그래야 여성호르몬의 생산이 활발해지고 피도 맑아지고, 몸 안에 건강한 온기(溫氣)가 돌게 된다.
탄수화물에 대한 지식도 중요하다. 탄수화물도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다.
경계해야 할 탄수화물은 단순정제당이다. 정제당의 대표격인 백설탕은 아주 빠른 속도로 흡수된다. 빠른 속도를 흡수된 당분은 몸을 과열시키고 결국 쉽게 지치게 만든다. 너무 빨리 쏟아져 들어온 당분을 처리하느라 인슐린을 비롯한 각종 호르몬들이 부산하게 움직여야 하고, 결국 호르몬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려 균형을 잃기 쉽다. 흔히 생리불순, 배란불순, 불임 등의 문제가 생기면 여성호르몬만을 생각하나 우리 몸의 호르몬 시스템은 결코 각각의 기관들이 독립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단일팀이다.
백설탕은 자연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연의 식물들은 탄수화물과 더불어 그 안에 비타민, 미네랄 등의 미량영양소를 동시에 함유하고 있는 영양소 꾸러미다. 그러나 사람은 식물에서 섬유질, 비타민, 미네랄은 완전히 제거하고 당분만 쏙 뽑아내 정제당을 만들었고, 그것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 정제당이 많이 들어간 음식이 바로 달고 부드러운 빵, 음료수, 아이스크림, 사탕, 과자, 초콜릿 등이며 각종 음식에도 과도한 양의 설탕이 뿌려지고 있다. 이런 음식을 멀리하는 것이 임신할 수 있는 건강한 몸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탄수화물 역시 지방처럼 사람이 힘을 내며 살아가는데 필수불가결한 연료이다. 그러나 빠르게 타버리는 종잇장 같은 단순정제당은 멀리하고, 대신 천천히 오래 타는 연탄과 같은,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이 함께 들어있고, 식이섬유도 풍부하게 들어 있는 음식으로 탄수화물을 섭취해야 한다. 즉, 통곡식(whole grain), 야채, 그리고 해조류로써 섭취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식탁은 곡식을 주식으로 하면서 각종 다양한 나물과 야채로 채워져왔었다. 한중일 삼국은 전통적으로 콩 문화권이었고, 콩밥, 콩나물, 청국장, 두부, 콩자반, 콩떡, 콩국 등 우리 식생활에서 콩은 빠질 수 없는 식재료였다. 부족해지기 쉬운 지방과 단백질은 그렇게 콩으로 보충해왔었다.
또 나물을 무칠 때는 불포화지방산이 가득한 참기름과 들기름으로 영양의 조화를 맞췄었다. 고기는 먹더라도, 닭고기는 푹 삶아서 백숙으로, 돼지고기도 푹 삶아서 김치와 함께, 소고기는 푹 삶아서 국에다 넣어 먹는 문화 아니었던가. 그런데 요즘은 온통 ‘후라이드’이며 달고 기름진 음식이 식탁을 장악했다. 우리의 식단이 서구식 식단을 바짝 뒤쫓아가며 단지 음식과 문화만 수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질병과 문제마저 수입하는 꼴이다.
불임을 극복하는 데에는 전통적인 한국식단이 가장 좋으며, 여기에 좋은 지방이 부족해지지 않도록만 신경쓰면 된다. 다양한 색깔과 열매, 줄기, 잎, 뿌리 등 다양한 부위의 식재료로 밥상을 구성해야 한다. 예를 들면 노르스름한 현미에 검은 콩이 들어간 밥, 빨간 토마토, 미강유에 살짝 볶은 주황색 당근, 하얀 연근과 잘 담근 된장, 초록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열무 김치, 깨를 뿌려 무친 고춧잎 나물, 보라색의 가지 나물, 바다의 미네랄을 머금은 쌈다시마 몇 장, 그리고 꽁치조림 한토막. 이런 식탁은 자연 안에 깃든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소중한 통로가 된다.
한의학에는 자연과 사람이 서로 상응한다는 천인상응론(天人相應論)과 자연과 사람은 하나이며, 사람은 자연의 일부라는 천인합일론(天人合一論)이라는 중요한 기본전제가 있다. 사람 몸은 끊임없이 자연과 호흡하면서 유기적으로 존재하므로, 사람에 의한 부자연스러운 먹거리 양산은 결국 자연계 생명시스템에도 부조화를 초래할 수 있다. 자연이 가진 가장 큰 힘이 바로 생명력이건만, 자연이 침해당할 때 그 생명력도 침해당하는 것은 어찌 보면 그 역시 자연스런(?) 일 아닌가.
“내가 먹는 것이 내가 된다”는 말이 있다. 부자연스러운 것이 들어가면 몸도 부자연스러워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몸이 자연스러운 조화와 균형을 되찾아 생명을 재생산하는 자연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보다 자연을 닮은 우리의 음식문화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한 해법이 될 것이다.
(Tip. 생리불순, 배란불순, 그리고 착상장애가 있는 여성들 중에는 손발이 차고 아랫배에서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한의학적으로 볼 때 신장(腎臟)의 양기(陽氣)가 저하되어 있는 경우로 세포 구석구석까지 혈액 중의 영양소와 온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는 상태를 나타내주는 증후이다. 이런 여성들을 위해서는 말린 생강(건강; 乾薑)으로 끓인 차나, 어린 쑥의 잎(애엽; 艾葉)을 말려서 차를 끓여 마시면 몸이 한결 따듯해진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로서는 오미자, 구기자, 산수유열매, 복분자 등의 씨앗이 도움이 된다. 모두 검붉은 색을 띤 종자로서 신장의 기운, 즉 난소의 생식능력을 북돋아주고, 신맛은 간장의 기운을 도와 기와 혈이 뭉치지 잘 소통되도록 돕는다. 바짝 말린 종자를 구해 보글보글 차처럼 끓여마시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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